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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올해 안에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올해 초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조처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고, 참여연대도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재계는 기업의 숨통이 트이게 됐다며 반겼고, 자유한국당은 추진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거들었다. 심지어 한국경제는 제작비 100억원대 이상 대작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참패한 원인이 주 52시간제에 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이는 한 제작사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것으로 해당 기사에 적합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별도의 알림을 내보내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바야흐로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노동과 자본의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노동자들의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현행 업무상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에서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해서 업무를 수행할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이를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52시간만 초과하더라도 교대제 업무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있거나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업무의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내용이 지침에 포함됐다. 장시간 노동은 업무상 뇌심혈관계질환의 강력한 위험인자다. 그래서 뇌심혈관계질환 인정기준에서 노동시간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 외에도 여러 위험요인이 있다. 최근에 반영되기 시작한 교대제 업무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그것이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정착되면 업무상 뇌심혈관계질환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강력한 복병이 나타났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다.

노사합의에 의해 3개월 단위로 실시할 수 있는 현행 제도하에서도 최대 20주까지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하다(첫 3개월은 휴가 후 10주 근무, 두 번째 3개월은 10주 근무 후 휴가를 적용할 경우).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 단위로 확대할 경우 이런 방식으로 하면 무려 18개월까지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인간의 몸에는 24시간 주기로 자전하는 지구에서 살면서 만들어진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가 있다. 적절한 휴식과 수면은 다음 노동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과 휴식과 수면이 일정한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신체에도 정신에도 이롭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정시 출퇴근을 선호하는 것은 이런 이로움에 근거한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시기는 기업 입장에서 집중적인 노동이 필요한 시기다. 당연히 평시에 비해 노동강도가 강화될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 단위로 확대할 경우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쓰러지는 노동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재계(혹은 이에 동조하는 정부)에서 하는 얘기가 있다. 미국·일본·프랑스·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노사합의로 최대 1년까지 기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의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주 52시간 상한제를 도입한 이유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선진국만큼 줄어든다면,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그 나라 노동자들만큼만 일하고 그들만큼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그들처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는 것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부 노동자들은 몰아서 일하고 오래 쉬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더 선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12시간의 초과 노동을 포함해 최대 주당 64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할 경우 일하다 죽을 수 있다. 애초 법정노동시간은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이다. 12시간의 초과노동을 제외하고(혹은 최소한으로 하고)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논의하자면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노동운동 역사는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동과 자본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다.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자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더 이상 목숨 걸고 일하지 말아야 한다.

김정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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